정식품의 창업 이야기
— 김욱영
1937년, 20세의 나이에 국내 최연소 의사가 된 정재원은, 1960년 43세의 나이에 유학길에 올랐다.
원인 모를 복부팽만과 소화불량으로 적지 않은 신생아들이 의사를 찾아왔지만, 어떤 의사도 아이들을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화불량에 걸린 신생아들을 고칠 방법을 찾기 위해 의학 선진국으로 떠나기로 선언했다.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공부했지만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졸업 후 곧장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UC 메디컬센터로 건너가 미국에서도 비슷한 증상이 있는지 샅샅이 뒤져보았다.
1964년, 그는 도서관에서 소아과 교재를 읽다가 무릎을 쳤다. 바로 유당불내증(lactose intolerance)이 소개된 대목이었다. 유당 불내증은 우유나 모유의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나는 증상이다. 이 증상을 앓는 신생아는 모유나 우유를 소화하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고 만다.
우유 대용식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에,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셨던 콩국을 떠올렸고 그 길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 명동에서 정소아과를 운영하며, 아내와 함께 우유 대용식 개발에 매달렸다. 정소아과 옆 20평 남짓한 지하실에서 실험용 흰 쥐를 잔뜩 갖다 놓고 쥐에게 유당불내증이 나타나는지 등을 실험했다.
이렇게 3년을 연구한 끝에 두유를 개발해 내고, 이것을 설사병에 걸린 신생아들에게 처방했다. 병상에 아이들은 곧장 눈을 뜨면서 기력을 차렸다. 정재원 회장은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인생에서 최고로 기뻤던 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설사병을 앓는 아이들 부모 사이에서 정소아과를 찾는 이가 점점 늘었다. 환자가 몰리자, 두유가 부족했다. 결국 사람들의 성원에 못 이겨 1973년 정식품이라는 회사를 세워 두유 대량 생산에 나섰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개인 병원만 운영하다 기업을 이끄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지요. 하지만 신생아들을 살리려면 창업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어요.
정식품의 대표 상품은 식물(vegetable)과 우유(milk)를 합친 ‘베지밀’이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집요한 추적이 결국 결실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