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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한 고찰

김욱영

24년 4월 18일

1. 세계는 흐른다. 시간은 흐른다. 세계는 하나의 방향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에 종속되어 있다. 세계가 더 많은 방향으로 흩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추상화 되어 하나의 방향으로 보여야 한다. 때로는 모호해져 개별의 움직임을 하나의 일관성을 가지게 해야 한다.


24년 4월 19일

2. 세계를 구성하는 최소 요소는 더 이상 추상화할 수 없는 생각(thought)이다. 생각에서부터 기인하여 행동하기에 생각이 최소한의 요소이다.

3. 생각의 총체가 개인의 세계이다.

4. 우리는 해결할 수 없는 생각 — 말하자면 막막한 생각에 대하여, 어떻게 접근을 시도해 볼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24년 4월 20일

5.생각은 실현 가능할 수도, 불가능할 수도 있다. 생각의 실행가능 여부는 생각의 존립 요건이 아니다. 그러나 생각이 행동을 유발하는 경우 실행 가능 여부를 고려 해야 한다.

6. 실행할 수 없는 생각이라고 해서 긍정적인 생각은 아니고, 실행할 수 없는 생각이라고 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다. 생각의 의미는 이것이 전체 방향성에 얼마나 일치하는지와 기여할 수 있는지로 판단되어야 한다.

7. 생각들은 조합에 의하여 행동을 주장하는 새로운 생각으로 구성될 수 있다. 이런 조합을 생각의 논리적 그림이라고 한다. 또한, 생각이 조합되는 과정에서 기존에 없던 생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24년 4월 21일

8. 같은 생각들 일지라도, 조합에 따라 다른 논리적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생각의 조합이 가능한 논리적 그림의 수다.

9. 생각이라고 하여 모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논리적 그림이라고 모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10. 생각의 한계는 이것이 나의 세계 내에서만 통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11. 우리는 생각을 때로, 주장하는 글이나 부정하는 글로 명명하기도 한다.


24년 4월 22일

12. 생각의 한계는 나의 한계이다.

13. 나의 세계의 한계는 외부 세계와의 접점에서 확장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외부 세계와 생각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명확히 하거나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 낸다.

14. 정리하자면 나의 세계의 확장은 생각을 조합하여 논리적 그림을 그리는 때와, 외부 세계와의 생각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24년 4월 23일

15. 생각이 가져야 할 단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명료함이다.

16. 세계가 확장되고 생각이 새롭게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이전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거나 외부 세계와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생각은 비교하는 활동이다.


24년 4월 24일

17. 이전 생각이 무의미해 보인다면 생각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확장되었기에 그런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 생각은 과거의 세계에서 가장 논리적이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18. 우리는 진리에 가까운 생각에 대하여,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된다.

19. ‘공이 아래에서 위로 떨어진다.’와 같이 외부 세계의 법칙으로 규정된 것만이 진리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반복적으로 행동하여 경험한 것에서 규칙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에 추상화 정도를 높여 일관성을 찾아 진리라 생각하기도 한다.


24년 4월 25일

20. 타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언어로써 문장이 같아도 다른 생각이다. 왜냐하면 생각은 문장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 비교하는 경험으로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4년 4월 26일

21. 사용하지 않은 생각은 의미가 없는 생각이다.


24년 4월 27일

22. 글을 쓰는 — 생각을 언어화하는 것의 목적은 생각의 명료화이다.

23. 생각을 명료화하는 것은 단순히 단어의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해석 가능성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24. 생각을 언어화했다고 하여, 생각과 문장이 같은 것은 아니다. 문장은 생각을 모사했기에 서로는 유사하나 동일하지 않다.


24년 4월 28일

25. 생각은 완전하지 않기에 우연적인 부분을 소유한다.

26. 생각이 삶의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고 — 더욱이 나아가 모든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삶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설명이 아닌, 소멸되는 과정에서 해결되었다고 인지되기 때문이다.

27. 외부 세계는 문제의 해결을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문제의 존재를 드러낼 뿐이다.

28. 감각적으로 경험하다 보면, 생각들의 논리적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림에서 규칙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생각을 명료화하는 방법이다. 이는 명료화가 단순한 언어 놀이가 아닌 경험적으로 체험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24년 4월 29일

29. 우리는 외부 세계가 나의 세계에서 모사하거나 논리적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 즉, 비교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느낀다.

30. 감정은 경험하는 것이다, — 단순히 사고하는 것이 아니다.

31. 생각은 비교하는 과정에서 확장되기에, 생각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야 한다.

32. 나는 모든 생각의 가치가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생각을 하나의 계층으로 — 말하자면 무한 서랍처럼 — 나열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

33. 어떤 생각이 ‘의미가 없다.’라고 생각해도, 그 생각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생각이 의미가 없다는 가치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되려, 아무런 마음과 생각의 변화가 없는 생각이 의미가 없다.


24년 4월 30일

34. ‘세계는 흐른다. 시간은 흐른다’ 라는 명제 #1은, 우리가 흐름의 전과정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뜻이 아니다. 시간에 따라 각 주체가 경험하는 것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세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어떠한 점, 그런 점과 점을 단순히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5. 비교한다는 것은 그 시점의 세계에서 구성되기에 매번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24년 5월 1일

36. 우리는 현재를 산다. 그리고 현재를 경험한다.

37. ‘생각한다’는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38. 감정은 경험하는 것이기에, 때로 누군가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도와줌으로써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이는 더 많은 방식으로 감각을 느끼는 방법 중 하나이다.

39. 나와 나의 세계는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 왜냐하면 둘 사이에는 우연적인 부분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40. 말하자면, 세게는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40. 말하자면, 세게는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4년 5월 2일

41. 우리는 외부 세계의 사실과 타인의 생각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단지 신뢰 정도의 차이를 구분할 능력이 있을 뿐이다.

42. 우리는 외부 세계와 생각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내가 예상하는 것과 미묘한 차이를 느끼면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다.

43. 세계는 — 특히나 나의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심지어는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44. 가장 근원적인 생각은 ‘어떠한 감각을 느꼈다’라는 생각일 것이다.

45. 그림을 그린다 — 라는 행위는 생각을 언어화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는 단지 생각을 기호하 한 방법 중 하나이다.

46. 생각으로 논리적 그림을 그리는 행위도 생각을 기호화한 방법 중 하나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생각을 언어화하는 과정에서도, 논리적 그림처럼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24년 5월 3일

47. 낯선 것 — 우리는 낯선 생각을 문학적이라 느낀다.

48. 세계는 나의 의지로부터 독립적이다.

49. 각자가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인지할 수 있지만, 각자의 세계는 결코 파악할 수 없다.


24년 5월 4일

50. 타인의 세계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은 우리가 결코 외부 세계를 전부 설명하거나,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51. 세계가 의지로부터 독립적이라는 사실에, 그리고 세계를 전부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다. 유아 시절에는 이 두려움에 기인하여 영웅을 동경하고, 생 전반으로는 신을 믿는 원천이 된다.

52. 종교 — 신을 믿는 행위는 두려움에 기인한다.

53. 나는 모든 감정이 두려움으로부터 촉발되었다고 믿는다.

54. 세계에는 법칙이 있다. 이는 자연과학의 법칙과 윤리적 법칙으로 구분된다.

55. 윤리적 법칙 — 도덕률은 각자가 다르다.

56. 나는 문뜩, 생각이 하나의 방향성을 가진다는 명제(명제 #1의 후반부)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이란 본디 상하좌우로 흔들리는 것. 때로는 망각되고, 다시 떠오르기도 하는 것. 이를 하나의 방향성으로 가두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생각이 하나의 방향성을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은 자유분방한 본래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

57. 나는 앞선 생각에서 생각이 의지에 의하여 변형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서, 개인의 의지에 생각이 달려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58. 생각은 마음의 부채가 되기도 한다. 많은 생각은 개인의 세계를 억압시키며, 때로는 개인이 무의식적으로 생각을 망각하기도 한다.


24년 5월 5일

59. 당장에 떠오르는 감정을 단순화 — 하나로 만드는 것을 우리는 쾌락이라 느낀다.

60. 때로는 고통스럽다는 감정도, 감정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기에 쾌락이 되기도 한다.

61. 윤리적 법칙이 다른 타인을 보며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24년 5월 6일

62. 각자의 세계는 결코 드러나지 않으나,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알아가려는 시도를 한다. 프로이트가 애도와 멜랑콜리에서 보여준 것처럼 타인의 생각에서 세계를 파악하려고 시도한다.

63. 타인의 세계와 나의 세계 — 이 두 세계만 있다고 가정하자. 이 가정 속에서 각 개인의 세계는 생각을 행동으로 하여금 외부 세계의 드러낸다. 어찌 보면, 외부 세계 조차도 각 세계의 모사형식일 수 있다. 단지 세계에는 몇 가지 법칙만이 통용될 뿐이다.

64. 나는 윤리적 법칙이라고 하는 것이 세계에서 통용되는 것이 아닌 각자의 세계에서의 법칙이고, 외부 세계에 있는 윤리적 법칙은 단지, 개인 세계의 법칙에 모사 혹은 사회적 합의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는 각자가 각자의 법칙을 만들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65. 세계 — 나의 세계와 외부 세계는 명확한 방향성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66. 생각의 방향이라는 것은 생각이 끝난 후에 정의된다. 세계의 총체적 방향 또한 그렇다.

67. 감각을 경험하는 것 또한 생각이기에, 우리는 항상 생각한다.

68. 나는 타인이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은 알 수 없다.

69. 내가 생각한다는 것은 생각이 끝나서야 비로소 말해질 수 있다.

70. 나는 나의 세계이다.

71. 나는 개인이 타인의 세계까지 인식할 수 없기에, 각 개인이 자신의 세계와 외부 세계만을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타인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72. 나의 세계는 외부 세계를 모사한 것이기에 세계에서 나만이 인식할 수 있는 주체라면, 어떤 면에서 나의 세계는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고, 세계는 나에게 유일해진다.(동조된다.)

73. 생각한다는 행위는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것. 또는 명확히 하는 것. 그러나 이 행위를 아무리 반복한다고 할지라도 세계에 대해서 알 수 있을 뿐, 달라지는 것이 없다. 생각은 세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세계에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24년 5월 7일

74. 각자는 각자의 세계만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리고 각자의 세계는 어떤 면에서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고 세계는 각자에게 유일해진다. 세계는 하나지만, 각자에게 유일하다.

75. 나는 위와 같은 사고로, 세계에 있는 각 요소도 하나지만 각자에게 유일한 것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


24년 5월 8일

76. 각자는 세계를 각자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각자가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는 같은 세계와 세계의 요소를 공유하지만, 이는 각자에게 유일하다. 세계도, 타인도, 기호도, 언어도 모두가 공유하지만 각자에게 유일한 것.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없고, 누군가에게 의미가 없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다.

77. 외부 세계에 있는 것은 자연과학의 법칙에 의해 만들어진다. 외부 세계에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면 이는 자연과학의 법칙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78. 나의 세계에 있는 것은 자신의 법칙 — 이를테면 윤리적 법칙 위에서 만들어진다.

79. 나의 세계 속, 그 어떤 것도 선천적인 것이 없다. 감각으로, 경험으로 생각하고, 논리적 그림을 그리며 법칙을 쌓아간다.

80.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만이 인식할 수 있는 주체라면 세계는 각자에게 유일한 세계이고, 이 유일한 세계들을 촘촘한 시간의 켜로 나눈 것이 세계의 총체이다.

81. 세계의 총체 속 요소를 비교하는 것이 ‘생각한다.’의 정의라 결론짓는다.


24년 5월 9일

82. 세계에는 그 무엇하나, 명확하고 확실한 것이 없다.


생각에 대해서 아무리 파고들어도, 나의 삶의 문제가 해결되거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단지, 생각은 비교하는 행위이며, 세계는, 세계의 요소는 각자에게 유일하다는 점. 그 점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것을 발판으로 생각에 대한 명제를 새롭게 정의한다면, 이 글은 글자 뭉텅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논고와 종이 뭉치만을 들고, 22일간 논산에서 생각에 관해 쓰다. (24.04.18 - 24.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