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의 비행 결심 속도
— 김욱영
V1 — 우리 말로는 비행 결심 속도, 항공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260에서 300km/h
이 속도에 다다르게 되면, 그다음에는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 된다. 바퀴에 펑크가 났든, 엔진에 이상이 있든 반드시 이륙해야만 한다.
여기서 멈추게 되면, 활주로를 이탈할 위험이 무척이나 커지기에, 일단 이륙을 한 후 비상착륙을 하는 편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한다.
조금은 딴 이야기지만, 마틴 루터 킹은 몽고메리 인권운동 3년 후인, 1958년에 이렇게 말했다.
I neither started the protest nor suggested it. I simply responded to the call of the people for a spokesman.
나는 시위를 시작한 적도, 제안한 적도 없습니다. 나는 대변인을 선출하라는 국민의 요청에 응답했을 뿐이에요.
로자 파크스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지 나흘 후인, 1955년 12월 5일 15경, 로자 파크스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목사들과 지역 사회의 지도자들이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마틴 루터 킹은 목사 중 한 명으로 참석했다.
그 조직은 이름도 없었을 정도로 급박하게 모였으며, 이들을 이끌 대표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Rufus Lewis라는 자가, 마틴 루터 킹이 우리의 대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고서는 몇 분 만에 마틴 루터 킹이 그들의 대표자가 되었다.
이에 대해서 마틴 루터킹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The action had caught me unawares. It had happened so quickly that I did not even have time to think it through. It is probable that if I had, I would have declined the nomination.
그 행동은 나도 모르게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너무 빨리 일어난 일이라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요. 아마 시간이 충분했더라면 대표직을 거절했을 것 같아요.
마틴 루터킹의 대표직 수락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달려가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달려가기를 결심해야 하는 때, 그 앞이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고,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때가 있는 듯 하다.
멈추거나 머뭇거리기보단 일단 날아오르는 것이 최선인 순간들 말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