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린 씨의 무덤을 찾아서
— 김욱영
1월 10일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저자인 우리 한국인인 전혜린(田惠麟) 씨가 서울 필동에서 죽은 날이다. 나는 조그마한 화환을 하나 들고 용인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선선한 날이었다.
전혜린 씨의 무덤은 법화산이라는 산 속 중턱에 있는 천주교용인공원묘지 안에 있었다.
조그마한 묘비, 인조 꽃 등으로 알뜰하게 장식된 수 많은 무덤 사이에 큰 비석으로 위에 세글자 '전헤린' 때문에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었다.
자그마한 지면과 한 개의 돌, 이름, 그것이 그녀가 남긴 현세의 자취였다.
나는 화환을 비석 앞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화환에 있던 두 송이의 장미 – 노란빛과 자주빛의 장미를 꽂았다.
두 송이의 장미를 꽂은 것은 전혜린의 책에서 보았던 한 수필 때문이었다. 전혜린의 <이미륵 씨의 무덤을 찾아서> 라는 수필에서 전혜린은 이미륵의 묘에 조그마한 화환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함께 온 S양이 노란빛과 자주빛의 장미를 꽂았다. 나도 그녀의 묘에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편지를 한 편 적어 화환 사이에 꽂아 넣었다. 그러고는 무덤을 한바퀴 돌았다. 비석 뒤에는 글이 한편 적혀 있었다.
전헤린은 그녀를 사랑하는 이들이 쓰는 애칭이라고 한다.
그러곤 앞에 놓인 하늘을 보았다. 비석이 몇 십여년 간 보았을 그리고 앞으로도 보게 될 하늘을 보았다.
생각을 멈추곤, 고독의 누에고치 속 자기를 잠가 보았다. 고요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에 앉았다. 그러곤 묘를 바라보고는 가져간 전헤린 여사의 책을 읽었다. <이미륵 씨의 무덤을 찾아서>와 <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스등>을 읽었다. 책을 읽을 수록 시선은 묘를 피해갔다.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읽고는
그 때 마침 가스등을 켜는 시간이어서 (5시경이었던 것 같다) 제복입은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좁은 돌길 양쪽에 서 있는 고풍 그대로의 가스등을 한등 한등 긴 막대기를 사용하면서 켜 가고 있었다. 더욱 짙어진 안개와 어둑어둑한 모색 속에서 그 등이 하나씩 켜지던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짙은 잿빛 베일을 뚫고 엷게 비치던 레몬색 불빛은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내가 구라파를 그리워한다면 안개와 가스등 때문인 것이다. - ⟪전혜린 / 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스등⟫
고요히 미소지으며 이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묘 앞 앉아있던 한 시간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것은 슬펐지만 이렇게 단 둘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녀를 기억하는 이들은 나이를 먹었고, 그녀의 책을 읽었던 문학소년들은 추억의 한편으로만 기억을 한다. 나도 세상을 뜨면 수 십년 후 나를 기억하는 이가 나의 묘를 찾아왔으면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로 가는 길, 보지도 못한 전헤린 씨가 몹시도 나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었다.